무언가를 내 손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건 아마도 7살때 부터.
디자인을 공부하고서 진짜 상품을 만들고 싶다 결심한건 27살 때 부터.
2018년 4월, 첫 취업을 하고 클라이언트의 요구조건을 맞추는 일은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노예라 네네 하며 맞추면서도
반항심인지 뭔지 내 손으로 똥만드는 기분은 참을 수 없었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창업을 생각해보듯이
나도 막연하지만 꿋꿋하게 꼭 4년 뒤에 퇴사하고 내 것을 할거라 다짐했다.
그 당시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와 그 추억속에서 매일을 살았기 때문에
퇴사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썼던 일기를 엮어 에세이로 독립출판도 하고,
순례길을 추억하고 기념할 수 있는 굿즈를 만들어 팔자라고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주니어 디자이너 옷을 슬슬 벗어가던 중
맘의 준비를 하지 못한 채로 아빠가 돌아가셨다.
나는 내 예상보다 많이 힘들어 했고 아무 상황에서나 눈물이 줄줄 흐르는
우울증 증상 때문에 약도 먹고 폭식도 하면서 살이 엄청나게 쪘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언젠가 엄마와의 이별도 준비를 해야한다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불안감이 굉장히 높았다.
난 평생 서울에서 살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엄마와의 당진 생활을 꿈꾸고 바랐다.
어떻게 하면 엄마랑 가까이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살 수 있을까
하지만 당진에 UX/UI 디자인 직무를 뽑는 기업은 없었고
비슷한 웹이나 시각 마케팅 디자인 쪽은 임금 수준이 지금에 비해 굉장히 낮았다.
그래서 프리랜서가 되거나 창업을 하거나 직무를 완전히 바꿔야만
당진에서의 생활을 꿈꿀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 창업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왔던 순례길 관련 굿즈와 책,,, 그리고 등산에서 무언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관심있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을 결합해 해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당진에서 청년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매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1월부터 관련 부서에 자주 전화해 일정과 공지를 확인하며 퇴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4월부터 시작된 당진 청년 CEO 100 양성과정 프로그램을 수강하게 되면서
아이디어와 시제품 제작에 대한 과정을 고도화 시켰다.
그리고 5월 중순, 데모데이 성과발표회를 통해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나의 첫 도약.
무언가를 만들어내는데에는 큰 금액이 아니지만 그래도 굉장히 뿌듯하고 성취감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알지 못했던 스타트업 세계에 대해 공부하며 정부지원사업,
로컬브랜드와 도시 재생 사업에 대한 것들을 찾아보며 매일 많은 것을 찾아보고 있다.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될지 아직 까만 밤같지만
꾸준히 뭐든 해내다 보면 무언가를 만들고자 했던 어릴적 내 꿈부터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까지 전부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잘 안되더라도 뭐,,,,경험으로 남길 수 있으니 어떻게 되든 행복할 것만 같아!
일단은 꾸준히 정진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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